의처증과 외도,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최근 부부간 갈등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인 [이혼숙려캠프]에서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홈캠으로 감시하고, 옷 냄새를 맡는 남편의 사연이 소개되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내는 과거 친구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있었고, 남편은 그 사건에 얽매여 아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배우자에 대한 병적인 의심, 즉 ‘의처증(의부증)’과 ‘배우자의 부정행위(외도)’는 서로를 원인으로 삼아 부부 관계를 파탄으로 이끄는 비극의 악순환을 만듭니다. 의심이 외도를 낳고, 외도는 더 큰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면, 법원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까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의처증과 외도가 얽힌 이혼 소송의 법률적 쟁점들을 주요 판례와 함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의처증과 외도

1. 의처증·외도, 법적인 이혼 사유가 될까?

우리 민법은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사유를 정해두고 있습니다. 의처증과 외도는 각각 어떻게 이혼 사유로 인정될 수 있을까요?

가. ‘의처증’, 그 자체만으로 이혼 사유?

단순히 질투가 많거나 가끔 의심하는 정도로는 이혼 사유가 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각하여 정상적인 혼인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민법 제840조 제6호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판례 역시 배우자의 의처증으로 인해 혼인이 파탄된 경우 이를 이혼 사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처증이 단순한 의심을 넘어 폭언, 폭행, 감금, 협박 등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명백한 이혼 사유가 됩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나. ‘배우자의 부정행위’, 명백한 이혼 사유

배우자의 외도는 민법 제840조 제1호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에 해당하는 명백한 이혼 사유입니다. 과거 간통죄가 형사처벌 대상이었을 때와 달리, 현재는 형사적인 책임은 없지만 이혼 소송에서의 책임, 즉 위자료 지급 책임을 지게 됩니다.

다만, 간통죄 폐지 이후 불륜의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불법 도청이나 주거 침입 등을 통해 얻은 증거는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증거를 수집한 쪽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의처증과 외도

2. 엇갈린 주장: “당신 의심 때문에” vs “네가 외도했잖아”

“당신의 의심 때문에 너무 힘들어 외도를 저질렀다”는 주장과 “네가 외도를 했으니 내 의심은 당연하다”는 주장이 맞설 때, 법원은 누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까요?

가. 유책주의 원칙

우리 법원은 기본적으로 혼인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 즉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가 먼저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나. 책임의 경중 판단

배우자의 의처증이 외도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법원은 보통 외도 행위 자체를 혼인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더 직접적이고 중대한 책임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처증으로 인한 고통이 있었다는 점은 위자료 액수를 정할 때 일부 참작될 수는 있지만, 외도라는 행위의 유책성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혼인 관계가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 났고, 상대방 역시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으면서 오기나 보복적인 감정으로 이혼에만 응하지 않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예외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의처증과 외도

3. 의처증이 가정폭력으로 이어진 경우의 법적 대응

의처증은 종종 폭언, 폭행, 감금 등 심각한 가정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이 경우, 이혼 소송과는 별개로 신변 보호를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모든 행위를 가정폭력으로 규정합니다 (대구지방법원 2020. 01. 17 선고 2019고합339,2019고합467(병합),2019고합468(병합) 판결 감금치상,주거침입,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상해,명예훼손,모욕).

가정폭력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 긴급임시조치 및 임시조치: 경찰을 통해 가해자를 주거 등에서 퇴거시키거나 100미터 이내 접근을 금지시킬 수 있습니다.
  • 피해자보호명령: 법원에 직접 청구하여 접근금지, 친권행사 제한 등을 명령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 (대구지방법원 2020. 01. 17 선고 2019고합339,2019고합467(병합),2019고합468(병합) 판결 감금치상,주거침입,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상해,명예훼손,모욕).
  • 가정보호사건 송치: 형사처벌 대신 사회봉사, 수강명령, 보호관찰 등 ‘보호처분’을 통해 가해자의 성행을 교정하고 가정을 보호하는 절차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 관련 판례 톺아보기

  1. 가정보호사건으로 보호처분을 받았는데, 같은 일로 또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나요?
  2. 아니요, 받을 수 없습니다. 법원에서 보호처분 결정이 확정되면, 검사는 같은 범죄 사실로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중 처벌을 금지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더라도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대법원 2017. 8. 23. 선고 2016도5423 판결 상해)
  3. 반대로, 법원에서 보호처분을 할 필요가 없다는 ‘불처분 결정’을 받았습니다. 그럼 이제 안전한가요?
  4.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원이 보호처분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더라도, 검사는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다시 공소를 제기(기소)할 수 있습니다. 즉, 불처분 결정이 형사처벌까지 면제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04. 07 선고 2016노40 판결 상해)
의처증과 외도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배우자의 의심이 너무 심한데, 이것만으로 이혼이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배우자의 의심이 합리적 근거 없이 병적인 수준에 이르러 지속적인 감시, 폭언, 모욕 등으로 나타나고, 이로 인해 도저히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면 민법 제840조 제6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Q2. 제가 외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배우자의 의처증 때문이었습니다. 이혼 소송에서 제가 불리한가요?
네, 불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원은 배우자의 의처증을 혼인 파탄의 한 원인으로 참작할 수는 있지만, 외도 행위 자체를 더 직접적이고 주된 파탄의 책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외도를 한 쪽이 ‘유책배우자’로 판단되어 위자료 지급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Q3. 배우자가 의처증으로 폭력을 행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즉시 112에 신고하여 신체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이후 경찰을 통해 가해자를 격리하는 긴급임시조치를 요청하거나, 법원에 직접 접근금지 등을 명하는 피해자보호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폭행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사진, 진단서, 녹음 등의 증거를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Q4.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잡기 위해 흥신소를 이용하거나, 몰래 녹음해도 되나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본인이 참여하지 않는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흥신소를 통해 배우자를 미행하거나 사생활을 캐는 행위 역시 불법의 소지가 있습니다.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는 재판에서 효력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소송을 당할 수 있으니 법률 전문가와 반드시 상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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