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합의 다 했는데… 재산분할 싫다며 말 바꾼 배우자, 이혼할 수 있을까요?
1. 가상의 사연: 뒤바뀐 약속
결혼 8년 차인 수진 씨는 남편 민준 씨와 성격 차이로 오랜 기간 갈등을 겪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더 이상 혼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하고, 협의이혼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자료는 서로 청구하지 않기로 했고, 결혼 후 함께 모은 예금과 주식도 절반씩 나누기로 쉽게 합의했습니다.
문제는 아파트였습니다. 신혼 때부터 함께 살며 대출금을 갚아 온 아파트의 분할 방법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논의가 길어지자 지친 수진 씨는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가정법원에 ‘이혼 및 재산분할 조정신청’을 냈습니다. 법원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민준 씨에게서 황당한 연락이 왔습니다. “생각해봤는데, 나 이혼 못 하겠어. 우리 다시 잘해보자.” 수진 씨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태도 변화에 당황했습니다. 이미 이혼하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이혼을 원치 않는다는 남편의 속내는 재산분할로 아파트의 절반을 넘겨주기 싫다는 마음인 것 같아 괘씸하기만 합니다.
이처럼 상대방이 이미 했던 이혼 합의를 번복할 경우, 수진 씨는 이혼을 할 수 없는 걸까요?

2. 첫 번째 쟁점: “이혼하자”는 약속, 법적 효력이 있을까?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지점입니다. 부부가 “우리 이혼하자”라고 합의했다고 해서 곧바로 법적인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법이 정한 이혼 방식은 크게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조정이혼 포함)’ 두 가지이며, 각각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만 법적으로 혼인 관계가 해소됩니다.
가. 협의이혼: ‘합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협의이혼은 단순히 두 사람의 합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정한 절차를 모두 완수해야만 성립합니다 (민법 제836조).
- 법원 확인 절차: 부부가 함께 가정법원에 출석하여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규칙 제73조).
- 이혼숙려기간: 법원의 안내를 받은 날부터 자녀 유무에 따라 1~3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민법 제836조의2).
- 이혼신고: 숙려기간이 지난 후, 다시 법원에 출석해 판사로부터 이혼의사를 최종 확인받고, 3개월 내에 시청이나 구청 등에 이혼신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이혼신고가 수리되어야만 비로소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됩니다. 따라서 이혼신고를 하기 전이라면, 설령 법원에서 이혼의사확인을 받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마음을 바꿔 이혼 의사를 철회하면 협의이혼은 무효가 됩니다. 사연 속 수진 씨의 경우처럼, 구두로 이혼을 합의한 단계에서는 상대방이 언제든 그 의사를 번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두 번째 쟁점: 배우자가 이혼을 거부하면, 방법이 없나요?
그렇다면 배우자가 이혼을 거부하면 영영 이혼할 수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마련된 제도가 바로 ‘조정이혼’과 ‘재판상 이혼’입니다.
가. 조정이혼: 법원의 중재를 통한 해결
수진 씨가 신청한 ‘조정이혼’은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조정이혼은 법관이나 조정위원의 중재 하에 당사자들이 이혼 여부, 재산분할, 위자료, 양육권 등 제반 조건에 대해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절차입니다. 재판상 이혼을 하기 전에는 원칙적으로 조정을 먼저 거쳐야 합니다.
만약 조정 과정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면(조정 성립), 그 내용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조정이 성립되는 즉시 이혼의 효력이 발생하며, 이후의 이혼신고는 이미 성립된 법률관계를 정리하는 ‘보고적 신고’에 불과합니다.
나. 재판상 이혼: 법원의 최종 판단
만약 상대방이 조정 과정에서도 완강히 이혼을 거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조정 불성립), 사건은 자동으로 ‘재판상 이혼(이혼 소송)’ 절차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혼 소송에서는 민법 제840조에서 정한 6가지 이혼 사유 중 하나 이상이 인정되어야 법원이 이혼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사연과 같이 이미 부부 사이의 신뢰가 깨지고 애정이 식어 혼인 관계의 본질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면, 이는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제6호)’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실질적인 관계 회복의 노력 없이 단지 재산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혼을 거부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혼인 관계가 이미 파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4. 세 번째 쟁점: 그럼, 이혼 전에 합의했던 재산분할 내용은 어떻게 되나요?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진 씨와 민준 씨가 이혼을 전제로 나누기로 했던 재산분할 약속은 어떻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협의이혼’을 조건으로 했던 재산분할 합의는 협의이혼이 무산된 이상 그 효력을 잃습니다.
우리 대법원은 “장차 협의상 이혼할 것을 약정하면서 이를 전제로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를 하는 경우, 그 협의는 장차 당사자 사이에 협의상 이혼이 이루어질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 협의 후 당사자가 약정한 대로 협의상 이혼이 이루어진 경우에 한하여 그 효력이 발생한다”고 명확히 판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0. 10. 24. 선고 99다33458 판결). 즉, 협의이혼이 아닌 조정이혼이나 재판상 이혼으로 절차가 변경되었다면, 이전에 했던 재산분할 약속은 조건이 성취되지 않아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정이나 소송 절차에서는 법원이 재산분할을 처음부터 다시 심리하게 됩니다. 법원은 혼인 기간, 재산 형성에 대한 각자의 기여도, 재산의 종류와 가액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재산분할 비율과 방법을 새롭게 결정합니다. 재산분할의 기준 시점 역시 과거 합의 시점이 아닌, 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 시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원칙입니다.

5. 결론: 차분하게 법적 절차를 밟아가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배우자가 이혼 합의를 번복했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 첫째, 구두로 한 이혼 약속이나 재산분할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 둘째, 상대방이 협의이혼을 거부한다면, 조정신청이나 이혼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셋째, 이전의 재산분할 합의는 무효가 되며, 법원이 소송 과정에서 모든 사정을 고려해 새롭게 재산분할을 결정하게 됩니다.
배우자가 말을 바꾸는 상황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법적 절차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합의 내용은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법원의 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혼인 파탄의 책임과 재산 형성 기여도를 법률적으로 명확하게 입증해야 합니다. 복잡한 법적 쟁점을 다루고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혼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6. 변호사에게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조정이혼을 신청했는데, 상대방이 계속 이혼을 안 해주겠다고 버티면 어떻게 되나요?
A. 조정기일에 당사자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정 불성립’으로 절차가 종결되고, 사건은 별도의 소 제기 없이 자동으로 이혼 소송(재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후에는 재판 절차에 따라 법원이 증거를 바탕으로 이혼 여부와 재산분할 등을 판결로 결정하게 됩니다.
Q2. 협의이혼 과정에서 재산분할 합의서를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았는데, 이것도 무효인가요?
A. 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공증은 그 합의서가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진정하게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합의 내용 자체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에 따르면 이러한 합의는 ‘협의이혼의 성립’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므로, 협의이혼이 무산되었다면 공증받은 합의서 역시 효력을 잃게 됩니다.
Q3. 상대방이 재산을 숨기거나 처분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A. 이혼 소송이나 조정신청을 제기하면서 또는 그 이전에 상대방 명의의 부동산, 예금, 주식 등 재산에 대해 ‘가압류’나 ‘가처분’과 같은 보전처분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보전처분은 소송이 끝날 때까지 상대방이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매우 중요한 법적 조치이므로, 신속하게 변호사와 상담하여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Q4. 이혼 소송으로 가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요?
A. 협의이혼에 비해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비협조적인 상황에서는 소송이 유일한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또한 소송 전 조정 절차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증거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친다면, 절차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면책공고
본 내용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법률적 자문이나 해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별적인 법률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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