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프리넙 쓸까?" 혼전계약서, 한국에서는 법적 효력이 있을까요?
최근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재혼 소식과 함께 ‘프리넙(Prenup)’ 즉, 혼전계약서가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수십조 원의 재산을 분할했던 첫 이혼과 달리, 이번에는 혼전계약서를 작성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심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혼과 재산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한국에서도 혼전계약서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습니다. “혹시 모를 이혼에 대비하고 싶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은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변호사를 찾는 예비부부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혼전계약서, 과연 한국 법원에서 그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이 글에서 혼전계약서의 의미와 법적 효력, 그리고 작성 시 유의할 점까지 꼼꼼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 혼전계약서(프리넙), 왜 쓸까요?
혼전계약서는 말 그대로 결혼 전(Pre-nuptial)에 작성하는 계약서입니다. 주로 이혼할 경우를 대비하여 재산분할, 위자료, 부채 문제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 미리 약속하는 내용을 담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혼전계약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달라진 결혼관: 이혼을 더 이상 특별한 실패로 여기지 않고, 발생 가능한 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 경제적 독립성 강화: 결혼 후에도 각자의 재산을 독립적으로 관리하는 부부가 늘면서, 재산 경계를 명확히 하려는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 특유재산 보호: 부모로부터 상속·증여받은 재산이나 결혼 전부터 보유하던 사업체 등 ‘특유재산’을 분할 대상에서 제외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국제결혼 증가: 혼전계약 문화가 보편적인 외국인과의 결혼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작성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변호사 사무실에는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재산은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다’거나, ‘퇴직 후 받게 될 사학연금은 분할하지 않는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혼전계약서를 작성하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 한국에서 혼전계약서의 법적 효력: ‘참고 자료’로서의 의미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혼전계약서, 법적으로 효력이 있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완전한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재판에서 매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우리 민법은 이혼 시 재산분할에 대해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의 액수 기타 사정을 참작하여’ 분할 액수와 방법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839조의2). 즉, 법원은 계약서 내용에만 얽매이지 않고, 이혼 시점의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재산분할 비율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혼전계약서에 “어떠한 경우에도 재산을 분할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더라도, 법원이 그 내용을 그대로 인정해주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전계약서가 무의미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법조계에서는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훨씬 낫다”고 조언합니다.
그 이유는 혼전계약서가 ‘부부의 의사를 명확히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 전 각자 보유했던 재산이 무엇인지, 특정 재산을 공동재산으로 편입하지 않기로 합의했는지 등을 명확히 보여줌으로써 재판부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3년 한 가사 재판부는 재산분할 비율을 판단하며 “원고와 피고의 혼전계약서에서도 (해당 부동산이) 원고의 소유임을 명시했다”고 언급하며 계약서 내용을 중요한 판단 근거 중 하나로 삼았습니다.

3. 자주 묻는 질문 (FAQ)
혼전계약서와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점들을 모아봤습니다.
Q1. 혼전계약서는 반드시 변호사를 통해 작성해야 하나요?
법적으로 정해진 양식은 없어 당사자끼리 작성해도 되지만, 법적 효력을 높이고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변호사의 자문을 받는 것이 매우 바람직합니다. 변호사는 법적으로 유효한 내용을 담아 명확하게 문서를 작성하고, 계약이 공정하게 체결되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Q2. 결혼한 후에도 비슷한 계약을 할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결혼 후에 작성하는 계약은 ‘혼후계약서(Postnuptial Agreement)’라고 부릅니다. 법적 효력은 혼전계약서와 유사하게 완전한 강제력은 없지만, 재산분할 시 부부의 의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Q3. 재산 문제 외에 가사 분담이나 배우자의 의무 같은 것도 넣을 수 있나요?
계약서에 포함할 수는 있지만, 법원이 이러한 인격적·신분적 관계에 관한 약속을 강제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자녀 양육권이나 양육비 등은 계약 내용과 상관없이 이혼 시점의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하여 법원이 결정하므로, 계약서만으로 효력을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Q4. 계약 내용이 너무 불공정하면 어떻게 되나요?
한쪽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내용이거나, 상대방의 강압·기망에 의해 작성된 사실이 인정되면 법원은 해당 계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약의 공정성은 효력을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Q5. 국제결혼의 경우, 어느 나라 법을 따라야 하나요?
국제결혼 시에는 혼전계약서의 효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는 계약서에 어느 나라 법을 기준으로 할지(준거법) 명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양 당사자의 국적 국가와 거주 국가의 법률을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반드시 국제 사법에 정통한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작성해야 합니다.
결론: ‘낭만’을 넘어 ‘현실’을 준비하는 지혜
혼전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어쩌면 낭만적인 결혼을 앞두고 너무 계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미리 조율하는 과정은, 오히려 두 사람의 신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혼전계약서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능 열쇠’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복잡한 재산 다툼을 줄이고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는 합리적인 해결을 돕는 ‘중요한 나침반’이 될 수 있습니다.
현명하고 안전한 결혼 생활의 첫걸음, 혼전계약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